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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쳇바퀴 대신 책바퀴(63) - 불화하는 말 들

조회수 686

이성복 - 불화하는 말들


나에게 시는 멀고 어려운 길이었다.

그런데 이성복 시인의 불화하는 말들을 읽고나서 용기와 호기심과 의지가 생겼다

나도 시인의 눈의로 세상을 봐야지ㅣ

시나 나오고 말고는 나중 문제일지라도 시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련다 


[책 중에서]

시를 쓸 때 다음 세 가지를 유의하세요 

우선 마루의 각을 세우라는 거예요 

기와집 추녀 끝까지 여자들 버선코 같이 꼭 그만큼 만들어 올려주면 돼요 

그리고 공깃돌 얘기했지요 다섯 개면 충분히 묘기를 부를 수 있으니까 더 이상 욕심내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첫머리에 나온 단어들은 시가 끝나도록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시를 쓸 때는 멀리 가되 반드시 돌아와야 하고 

자기 땅을 확보해야 하고 

멀면서도 가까워야 하고 보일 듯이 보이지 않아야 해요 

그래서 부정확한 게 가장 정확한게 돼요


동그라미 그릴 때 손가락으로만 돌리면 얼마나 작아요 

그러나 손목과 팔꿈치와 어깨까지 동원하면 점점 큰 원이 그려지지요 

신은 더 큰 의식을 사용하는 거예요


신은 말 맛과 짜임새로 이루어져 있는데 말 맛보다 더 중요한 게 짜임새예요 

연애에도 욕망에도 짜임새가 있지만 우리가 의식 못할 뿐이지요 

작품의 짜임새를 통해 인생의 구조 드러내기 

그게 다에요


신은 언어가 스스로 번지면서 만들어내는 무늬 예요

산모는 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주지만 신은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죠 

신은 삶 앞에 마주 서게 하고 눈뜨게 해요

정상적인 언어의 흐름을 교란시킴으로써 삶의 치부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것


바닷물이 몇 단계로 깊어지듯이 언어에도 여러 단계의 깊이가 있어요 

가장 바깥에 일상어 사회적 언어가 있다면 가장 안쪽에 옹아리 같은 모으시게 언어가 있지요

시의 언어는 옹아리와 일상호 사이에 있어요


춤출 때나 스케이트 탈 때 아빠를 내어놓고 뒷발 살짝 갖다대듯이 앞 말벌려놓고 뒷말 살짝 붙여보세요

예술가가 하는 일이란 잊혀진 것들을 다시 불러오는 거예요 

새로운 걸 본다는 건 새롭게 편집하는 것이고 젖혀 있던 것들을 펼치는 것 외에 다른 발견은 없어요


땅바닥에 돌을 늘어놓는 것이 산문이라면 물에 던진 돌의 파문을 연결하는 방식이 시예요 

마루의 번짐과 퍼짐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 시인이 할 일이에요

주먹이 아니라 장도 리의 무게로 못을 칠하죠 말을 할 때도 그렇게 해야 해요 

연못에 돌을 던지면 여러 겹의 동심원이 생겨나듯 말의 파문이 퍼져나가도록 해야 돼요


시적 글쓰기는 비틀기 틈새 만들기 어긋나기 예요

밥을 먹고 라는 말 뒤에 밥그릇 속에 잠시 앉아 있었다는 말을 끼워 넣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나지요 

문장을 살짝 비틀기만 해도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요 그건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섬광이에요...


우리가 시를 쓰는 건 섬광과도 같은 문자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예요

그 안에 우연과 돌발변수를 집어넣으세요 말에 실려가는 모험을 해야 해요


언어를 부를 생각하지 말고 언어의 부림을 받아야 해요

 비둘기목 색깔 처럼 순간순간 달라지는 언어의 빛깔에 민감해야 해요


언어의 소리와 빛깔에 민감해지도록 하세요 항상 낯선 대로 어려운 대로 모르는 대로 향하세요 

글을 쓴다는 건 말을 사랑하는 거예요 작가는 말 이제 할 일을 하도록 돌보는 사람이에요 

글은 내 몸을 빌려 태어나는 것이지 내가 만드는 게 아니에요


글에 힘이 실리려면 침묵과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좋은 글 앞에서 부끄러워지고 3 엄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에요


산모는 대낮에 평지를 걷는 것과 같아요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훤히 보이니까요 

시는 밤에 등불을 들고 오르막길을 걷는 거예요 

가고 있다는 사실만 알 뿐 앞을 내다볼 수가 없어요 이때 등불은 언어 겠지요


바깥은 말장난처럼 하되 속은 쓰려야 해요 나긋나긋한 말 속에 쓰라림을 숨기세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세요 


바르고 칙칙한 것들을 디테일로 사용하고 멀쩡한 것들 안에 칼날을 숨기세요

어리숙하고 시답지 않은 것이 좋은 거예요 

신은 큰 길이 아니라 골목길에 있어요


모기가 다가올 때는 모르고 있다가 가고 나면 점점 가려워지고 땡땡 부어오르면서 기분이 안 좋지요 

시도 그렇게 와야 해요 또 갈 때도 그렇게 가야 해요


시와 산문의 차이는 피아노와 실로폰의 차이예요 

피아노는 건반을 눌러 소리를 내지만 실로폰은 일일히 때려줘야 하잖아요 

강약을 조절하는 데에도 차이가 있어요 

피아노는 페달을 밟아 하지만 실로폰은 일일히 팔 힘으로 조절해야 해요 

시를 쓸때 그 차이를 느껴보세요



시의 윤리는 순간적인 각성이에요 

내가 얼마나 잡놈인가를 보여주면 읽는 사람 누구나 감동받게 돼 있어요 

읽는 사람도 잡놈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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